머리가 좋다는 건 때로 축복일 수 있지만, 때론 무게가 됩니다. 영화 <배드 지니어스>는 바로 그 무게 속에서 갈등하는 한 천재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시험 부정을 다루는 학원 스릴러지만, 그 이면엔 윤리와 현실, 정의와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본질적인 딜레마가 숨 쉬고 있습니다. 한 편의 치밀한 범죄 스릴러이자, 한 소녀의 성장통을 따라가는 태국의 감정적인 드라마. <배드 지니어스>는 ‘정답이 없는 질문’으로 관객의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립니다.
시험 부정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택하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학업과 커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들고 나와 관객을 시험합니다. 천재 여고생 ‘린’은 처음엔 친구의 부탁으로 답을 넘겨주게 되지만, 그녀의 머리는 단순한 부탁을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합니다. 답을 피아노 건반 순서처럼 외우고, 시험 시간에 몰래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듯 넘기는 이 치밀한 계획은 놀랍도록 전략적이고, 또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커닝의 스릴감만을 노리는 작품이 아닙니다. <배드 지니어스>가 탁월한 이유는, 그것이 왜 가능했는지를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학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구조,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불평등, 돈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벽. 이 모든 것이 린을 커닝이라는 선택지 앞으로 데려온 ‘사회적 압박’이며, 결국 영화는 커닝보다 그 배경에 더 깊은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시험지보다 더 복잡한 것은, 그 시험을 둘러싼 인간의 사정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알려줍니다.
천재 학생 린의 심리와 갈등 구조
린은 ‘똑똑한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른보다 더 현실적인 아이’입니다. 그녀는 머리로 모든 걸 이해하지만, 감정으로는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혼자 힘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 린에게, 공부는 ‘목표’가 아닌 ‘생존의 수단’입니다. 그 현실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동력이죠. 린은 처음 커닝을 제안받았을 때 망설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린 건, ‘이 시스템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사회의 메시지였습니다. 정직한 사람보다 잘 속이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 린은 그 안에서 천재성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룰을 어기는 쪽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 선택이 처음엔 두렵고 불편했지만, 결국 그녀는 거기서 ‘능력’을 확인하게 되고, 동시에 죄책감이라는 부메랑도 맞게 됩니다. 이 영화가 묘한 점은, 린이 계속 나쁜 짓을 하면서도 관객이 그녀를 응원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탐욕이 아닌, 외롭고 불안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너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서서히 끌어당깁니다. 린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스릴러적 긴장과 사회적 통찰의 조화
<배드 지니어스>는 형식적으로는 ‘시험판 오션스 일레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커닝을 위한 암호 체계, 타이밍을 맞춰 손짓을 주고받는 장면들, 시험 시간의 초 단위 긴장감. 이 모든 게 마치 스파이 영화처럼 전개되며,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닌, 뼈 있는 통찰입니다. “공정한 시험이 존재할 수 있는가?” “능력은 정당하게 사용되어야만 하는가?” “누군가를 속인다는 건 언제나 잘못된 일인가?” <배드 지니어스>는 이 질문들을 관객에게 은근히, 하지만 끈질기게 던집니다. 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는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극도로 밀도 있게 연출하며, 한정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 두려움, 판단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특히 린과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파열, 책임의 분산, 신뢰의 붕괴 등은 그 어떤 액션보다 더 긴장감 있게 다가옵니다. 그 끝에서 관객은 단순한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 선택 속에 놓여 있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배드 지니어스>는 천재가 악당이 되기까지의 서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한 소녀를 어떻게 ‘악하게’ 만들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주는 사회적 드라마입니다. 공부, 시험, 능력, 윤리… 우리 모두가 익숙하게 쓰지만,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단어들을 이 영화는 다시 꺼내놓고, 묻고, 흔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단순한 고등학생들의 커닝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현실을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한 청춘의 이야기이자,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민낯입니다. 공감할 준비가 되셨다면, 오늘 밤 <배드 지니어스>를 틀어보세요. 당신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